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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2일. 대중교통 / 우정총국

 

 

 

2015년 4월 22일.


[오늘의 음악] 대중교통


예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 달라진 것이 있다면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것 같다.


일단 기숙사에 사니까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해 통학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른 대학교처럼 교문만 나가면 펼쳐져 있는 대학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덕에, 뭐든지 밖으로 나갈 일만 있으면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닐 일이 뭐 그렇게 생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1주일에 한 번은 학교 밖으로 나가게 되니까.


지하철이 수도권 말고도 대구, 대전, 부산, 광주까지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큼지막한 도시에서 온 사람은 아니다. 버스는 어느 곳에 가도 있지만, 나는 시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넉넉잡고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서 왔으니, 버스를 탈 일도 거의 없었다. 결국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일이 한참 늘어난 것이다. 이제는 뉴스에 흘러나오는 ‘대중교통비 인상’에 헉, 하며 진짜 내 문제로 받아들이며 비용을 계산해보는 정도의 생활이 되었다.


그런데 대중교통을 타다 보면 상당히 억울한 일이 몇 발생한다. 대표적으로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향해 직선으로 가지 못한다는 거. 지하철에서 아니면 버스에서 정해진 노선대로,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와는 관계없이 달려야 한다. 거기에 지하철에는 차가 막히는 일은 없지만, 버스에서는 차가 막혀도 정류장에 서기 위해 오른쪽 한 차선으로만 달려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리게 되고.


노선을 헷갈리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지하철이야 역에서 고개만 돌리면 노선도가 있어서 웬만하면 노선을 헷갈리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막 도착한 지하철을 급하게 타려다 실수하는 경우나, 노선도를 안 보고 물어물어 가려다 착각하는 경우, 방향을 착각해 반대로 타는 경우도 많고, 정신을 놓고 있다가 역 이름을 보고서 지나친 줄 알고 내리는 경우도 있지. 버스는 주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지도 기능을 이용해서 보고 타는데, 어쩌다 가끔 더 가까운 노선이 있는데 괜히 빙 돌아서 간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중간에 종점이 끼어 있어서 내렸다가 같은 데서 같은 노선을 버스비 다시 내고 타야 하는 경우가 생길 때도 있다.


‘막차’라는 것도 그렇지. 물론 타는 사람이 적으니 심야 운행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알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놀다가도 막차 시간을 머리 한 쪽에 넣어 두어야 한다는 사실은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뭐 천 얼마 내고 서울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불평도 많다, 하시면 사실 별로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애써 이런 말을 무시하며 불평 한 가지를 더 늘어놓자면, 그건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거겠다.


버스를 기다리거나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갈아타는 횟수가 많을수록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움직이지도, 뭔가 생산적인 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앉아서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 쓸데없이 버려지는 시간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불평만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니다. 정류장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도 재밌고, 덜컹이는 버스나 지하철의 자리에 앉아 잠깐의 휴식을 갖기도 하고. 가끔은 머릿속에 있는 잡생각들을 끄집어내 보기도 하고. [오늘의 음악]의 상당수가 지하철 안에서 만들어졌을 정도로!


오늘의 음악,으로 골랐다. 덜컹이는 버스 차장으로 보이는 풍경과 이어폰을 꽂은 귀에 은은히 울리는 음악.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수많은 불평은 그냥 한 번 해 보는 푸념일 뿐. 여전히 나는 그 시간에 산다.






[오늘의 역사] 우정총국


1884년 4월 22일, 조선에 우정총국 설치가 시작되었다.


▲ 현재 남아있는 우정총국 건물


조선의 우편 업무가 최초로 시작된 것은 1882년 12월이었다. 흥선대원군의 실각 이후 권력을 잡은 개화파는 1880년 개화 업무를 담당하는 ‘통리기무아문’이라는 기구를 설치한다. 이 기구는 흥선대원군이 잠깐 권력을 잡았던 임오군란 당시에 없어지는데, 임오군란이 진압되고 다시 개화파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이 ‘통리기무아문’이라는 기구가 ‘통리군국사무아문’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으로 분화되어 다시 설치된다. 뭔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같지만 일단 적당히 넘기기로 하자.


어쨌든 이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안에 1882년 12월, ‘우정사’라는 우편 담당 기구가 설치된 것이 조선시대 근대적 우편 업무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 ‘우정사’라는 기구가 우편 업무를 완전히 실행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업무 자체가 꼭 우편만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교통과 체신에 대한 전반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이 우정사가 실제로 어떤 업무를 했는지조차 확실히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 ‘우정사’는 곧 개편을 맞는다. 1884년 4월 22일, 고종은 재래의 ‘역전법(驛傳法)’을 근대식 우편 제도로 고쳐 ‘우정총국’의 설치를 명한다. 뭐 아무리 전제군주 시대라도 고종이 ‘하라’ 그래서 하루아침에 일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우정총국이 들어설 건물을 마련해야 하고, 관련 법제도 정비해야 한다. 책임자도 임명해야 하고.


바로 다음날인 4월 23일 책임자에 홍영식이 임명되면서 우정총국은 본격적으로 개국 준비를 시작한다. 관련 법령을 마련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데는 반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조선 정부는 일본, 영국, 홍콩 등의 외국과 우편물 교환 협정을 체결했고, 같은 해 11월 18일부터 우편 업무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때까지 우정총국은 청사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우정총국이 청사를 갖게 된 것은 한 달 가까이 지난 1884년 12월 4일에 이르러서였다. 우정총국 청사는 원래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이는 의약을 조제하고 약재를 재배하던 ‘전의감’이라는 관청이 있던 자리에 들어섰다.


12월 4일, 우정총국 청사에서는 우정총국 청사의 개설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가 열렸다.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이다. 아마 ‘우정총국’이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었다면 바로 이 연회장에서 일어났던 사건 때문이겠지. ‘갑신정변’이라는 사건이 바로 이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장에서 일어난다.


▲ 갑신정변의 주역 4인.

왼쪽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물론 알려져 있다시피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끝나고 실패한다. 결국 ‘갑신정변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던 우정총국 역시 갑신정변 실패 이후인 12월 8일 폐지된다. 우정총국의 폐지 이후에도 우편 사업은 잠깐 계속된다. 우편 사업이 완전히 중단된 것은 이듬해인 1885년 1월 5일의 일이었다.


우편 업무가 다시 재개됐던 것은 10년이 흐른 1895년 을미개혁 당시의 일이었다. 1900년에는 대한제국도 만국우편연합에 가입해 국제 우편 업무를 개시하고.


이후에는 1905년 4월 1일, 일제에게 통신권이 넘어가면서 대한제국은 우편 업무를 관장할 권한을 상실하게 된다. 일제하에서도 지속적으로 운용되던 우편 제도는 1948년 8월 15일 건국과 함께 체신부가 설치되면서 다시 우리 권한으로 돌아오게 된다. 2000년에는 ‘체신부’가 건국 이후 52년간 이어오던 이름을 바꾸어 ‘우정사업본부’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우정총국이 있던 건물은 우정총국의 폐국 이후 한어학교, 중동학교 등 다양한 학교가 입주해 사용하게 된다. 1972년 12월 4일에는 이 건물을 체신부가 인수하면서 다시 우체국 소유로 돌아오게 되고. 체신부는 이 건물을 ‘우정총국 체신 기념관’으로 사용하게 된다.


2012년에는 이 건물이 기념관 뿐 아니라 우체국 업무도 재개하게 되었다. 우정총국이 우편 업무를 포기한 지 128년만의 일이었다. 현재는 ‘느린우체통’이 설치되어, 엽서에 사연을 적어 보내면 1년 뒤에, 적어둔 주소로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운용하고 있다.


사실 별스럽지 않게 취급해 둘 수 있는 역사다. 우편업무가 어쩌고 저쩌고를 떠나 우리는 지금 우체통에 편지 넣으면 잘 배달해 주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던가. 역사 교과서에서도 어떤 왕이 즉위하고 어떤 왕이 자리를 빼앗겼는지가 중요하지, 우편 업무가 언제 시작됐는지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정총국 축하연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역사 교과서에 그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정도로.


하지만 한 서민의 일상을 생각해 보자. 편지를 보내면 멀리 있는 사람과 직접 만나지 않아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의 도래를 생각해 보자. 가히 혁명적이지 않았을까.


우체국의 역사, 아주 작은 것의 역사. 하지만 아주 큰 것의 역사. 그것을 돌아보고 싶은 날이다.


[출처] http://widerstand365.tistory.com/360